쿠로오.
이제 여긴 형편 없이 작아졌어. 모두 떠날 준비를 하는 것 같아. 며칠 전에 먼지 쌓인 창고 선반을 치우지 말고 그대로 두라는 얘길 들었거든. 선체에 사람을 최대한 많이 태워야 하기 때문이겠지. 우드 씨가 그랬는걸. 우드 씨 기억하지? 부선장 말이야, 이젠 선장이 되었는데…… 여하튼 그 사람은 모두가 되도록이면 미련이 없기를 바라고 있어. 그래야 선체에 실을 물건이 적어질 테니까. 나는 고민하다가 앨범 하나랑 게임기를 챙기기로 했어. 그거 좀 가지고 간다고 엔진이 딸리진 않을 거 아냐. 청소는 치우는 재미가 아니라 뭔갈 발견하는 재미로 하는 거지. 앨범도 챙기다가 뒤지게 되었어. 중간중간에, 네가 써준 편지가 끼워져 있어. 너 열일곱 되고 나선 별로 써주진 않았지만…… 그 전의 것들 말야. 이것저것 헤집어 보다 보니 네가 사진을 찍을 때 자주 취하던 포즈, 혹은 구태여 사용하는 단어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와. 그때마다 네가 어릴 적부터 내게 겁을 줬던 게 생각나. 우주를 떠돌다 보면, 소행성과 만날지도 몰라.
인류가 비슷한 걱정을 했었지.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면 어떡하나, 하는 거. 그런데 그 문제가 피부로 다가오기도 전에 이미 우린 여길 떠날 준비를 하게 되어버렸어. 내가 합류한 게 칠 년 전, 너는 그 전부터 있었으니 우리가 통틀어 아는 이별의 역사는 십 년이 훨씬 넘어. 보금자리로부터의 안녕. 조금 슬퍼도, 그게 모두를 위한 길이라면 말이야…… 우리 스스로를 위한 결정이었지만 이 별에도 좋은 기회가 될 거야. 우리가 떠나면 숨쉬기가 한층 더 수월해지겠지. 좋아지면 더 좋아졌지 결코 악화는 없어. 결국 이 모든 건 예정되어있었던 것 같아.
그래서 네가 떠난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밖에 할 수 없는 건가 싶어. 그렇지 않았으면 변할 것도 없었겠지. 이 별의 탄생에도 종말에도 인간은 없으니까.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단 건 우리 사정이 아니라고 몇 번이고 말했던 적이 있지. 흙과 흙 사이에 낀 어중간한 존재들. 우리 근본은 유목민이고 유한이기에 그 어디에도 영속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어. 너는 나보다 좀 더 근성 있는 인간이었지. 나는 눈앞의 것들이 중요했고. 모두 더 큰 목표 위해 작은 것을 희생해야 할 줄 한다고 말하지만, 누군가에겐 그 작은 게 더 소중할 수도 있잖아. 네 의견에 반대하는 건 아니야. 말했잖아, 악화는 없다고. 네가 보내준 데이터와 위성 사진 덕에 우린 어느 정도 탄탄한 인포를 완성했어. 이제 네가 전해준 그 새로운 별로 가려고 해. 거기 네가 있을지 모르겠어. 그렇게 말했더니 우드 씨가 네 흔적은 있을 거라고 했어.
그런 말 솔직히 위로 안 되는 거 너도 알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와 우주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비슷한 것 같아. 차라리 그 둘은 존재보다는 속성에 가깝지. 지금까지만 해도 여러 연구가 이루어졌잖아. 이를 테면 사후세계와 명왕성 같은 거. 요즘은 분주한 사람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어. 무언가 알아내고자 하는 게 인간의 본능이라면, 그건 인간으로서 다른 존재들보다 월등하게 가지는 지적 호기심이라기보다는 되려 일차원적인 생존과 연관되어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무지와 암흑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발버둥이려나. 그런 걸 좀 더 근사하게 포장하면 사람들이 주장하고 나서는 지적 호기심이니 뭐니 하는 게 되겠지. 죽음도 결국 잘 알지 못해 두려운 거라면,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너무 많은 걸 두려워하며 사는 거야. 쿠로오, 나는 어렸을 적부터 너 없이 홀로 남겨지는 걸 많이 무서워했어. 역시, 상상할 수 없었기에…… 그러니까, 알지 못해서 두려워했던 게 아닐까.
지금은 그런 게 어떤 건지 알게 되었지. 나는 너 없이 네가 남기고 간 물건들을 챙기고 있으니까. 네 부재 속에서 나는 서툴지만 어떻게든 잘 지내고 있고, 예전에 상상하던 것만큼 어렵고 비참한 일이 아니라고도 느껴. 그런데도 여전히 선뜩해지는 순간이 찾아와. 맨등보다는 복부로, 뒷목보다는 가슴으로, 얼음 위에 몸을 뒤집어 누운 듯 둥그런 한기가 모이는 때가 종종 있어. 칠 년. 네가 떠나고 내가 네 자릴 대신했지. 칠 년이면 적응에는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해.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너무 잘 알고 있어. 그런데도 가끔은…… 이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거지, 쿠로오.
네가 보내준 데이터에 의하면 신성新星은 하루가 약 18시간. 바이오리듬을 제대로 바꿔야겠지. 삼시세끼란 말도 사라질 거야. 아침과 점심을 먹으면 당일의 활동량은 모두 충족할 수 있을 테니까. 블랙홀 너머에 있기 때문에 활주로를 사선으로 잡고 연료를 상당 보류해두어야 할 거야. 그러니까 하루가 약 18시간이라고 해도 그것은 태엽에 태엽을 이어 조작된 기계에 의거한 시간에 불과하지. 엄청난 왜곡을 사이에 두고 있기 때문에 지구의 시간을 잡아먹는 별이라고 해도 무관할 거야. 그곳에서의 한 시간은 아마도, 지구에서의 몇 십 년. 지구를 몇 십 년 후로 당겨 놓는다고. 더 이상 우린 이 별에 머물지 않을 테니 상관없는 것일까. 쿠로오, 이것 봐. 우린 여길 떠나기 직전까지도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살았어.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왜소해지고, 작아진 만큼 시간에 끌려 다녔지. 그게 일상이었으니까 이상할 것도 없었어. 시간이란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 대단한 시간도 어마무시한 중력 앞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거야. 18시간이 24시간의 몇 천 배라는 게 말이 돼? 그런데 정말로, 말이 된단 말이야. 시간이 마구 휘어지기도 하고 캐러멜처럼 쭉 늘어나기도 하고 반대로 짓눌린 스프링처럼 짤막해지기도 하고. 시간이 사람을 마구 끌고 간다고 우린 여태까지 믿어왔는데, 알고 보니 시간도 더 엄청난 물질에 의해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는 이야기. 우리가 끌려가는 이의 뒷다리에 매달려 함께 끌려가고 있었다는 그런 이야기. 그렇게 생각해보면, 모든 게 너무 빠르게 끌려가기만 하고 있어. 앞을 보고 무작정 질주하고 돌진하는 것들 중 하나야. 시간이 들쑥날쑥 앞당겨져서 엉망이 되어버린 건 여러 번 봤지, 꼭 네가 전해준 별이 아니더라도. 그런 별에 몇 시간 머물다 지구로 돌아오면 이 별에서는 이미 몇 십 년이 흐른 후일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시간이든 중력이든 뭐든…… 늘 상승구조의 그래프를 그리고 있지만 하향을 그리는 건 본 적이 없거든. 넌 본 적 있어? 시간을 과거로 끄는 별을. 지구를 몇 십 년 전으로 되돌려 놓는 별을 본 적이 있느냔 말이야.
우리는 왜 이미 죽은 사람들을 사랑할까. 이미 과거가 된 사람들을 우리는 대체 왜. 시간도 거스를 수 없었던 그 무시무시한 중력을, 사랑은 어떻게 해서 거스르는 걸까.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구분을 허물면서 말이야. 인간은 평생을 살면서도 사랑에 대한 문제를 풀 수 없을 거야. 여태 많은 의문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그것만큼은…… 그것이 우리 안에 내재해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분명 네 부재에 적응했지만, 부재를 인정했지만, 그렇지만 여전히 네가 그리워. 엔진 가동되는 냄새가 나. 미끌미끌한 점성질의 기름, 숨구멍을 죄 조일 것 같은 그런 냄새. 곧, 그 시간도 중력도 거슬러 올라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증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감정이 여전히 흔적으로서 남은 과거에 현존하지.
내가 나로부터 팽팽해지고 있어. 줄다리기를 하듯이 양끝으로…… 내 몸과 마음이 점점 멀어져. 이제 차차 여길 벗어날 거야. 나는 너를 사랑해.
쿠로오.
우주를 떠돌다 보면, 소행성과 만날지도 몰라. 브레이크를 해제하고 엔진을 가동했을 때 선체가 와르르 무너지듯 떨렸어. 소행성과 정면으로 충돌하면 이런 느낌일까 싶더라고. 그래서 한동안은 내가 떠는 걸까, 아니면 떨리고 있는 것인가, 구분할 수도 없었지. 나는 안전벨트를 삼단으로 차고 그 속에 앨범과 게임기까지 구겨 넣었기 때문에 몸집의 두 배가 부풀어있었어. 벨트가 끊어지지 않는 게 다행이구나, 하고 우드 씨가 출발하기 전에 투덜거렸던 거 같아. 여하튼 궤도를 벗어날 때 엄청난 가속력이 붙어 선체가 180도로 뒤집혔어. 재빨리 소진된 엔진을 해제했지. 우드 씨는 조종석에 앉기 전에 웬 시꺼먼 초음파 사진 한 장에 입을 맞추면서 “사랑한다” 하고 속삭였어. 우드 씨의 딸이야. 난산이라 태어나고 세 시간 뒤에 죽었다더라. 그러니까, 딸을 지구에 묻어두고 온 거지. 나는 앨범을 열어 네 사진에 입맞출까 하다가 징그러워서 그냥 관뒀어.
너는 소행성을 만났을까. 너는 어디일까. 죽은 걸까. 이 드넓은 우주에 있다 보면 말이지, 결국 죽음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돼. 그래서 너는 틀림없이 있다, 여기 어딘가에. 그런 믿음도 갖게 되지. 우드 씨는 망상이고 착각이라고 언질 줬지만 설득력 없어. 그 사람, 떠나기 전에 죽은 딸의 사진에 입을 맞췄잖아. 죽은 사람에게…… 그런 사람이 냉랭한 척해봤자 그 무엇으로도 보이지 않아. 그래서 너는 어디야. 엇갈릴 수도 있겠다. 여긴 벽도 바닥도 천장도 없이 사방으로 뻗은 곳이니까. 혹시 몰라? 새로운 별에 내가 도착했을 때, 넌 되려 예전으로 돌아간 지구에 느닷없이 발을 딛게 될지. 그럼 너는 아마 내게 편지를 쓰겠지.
안녕, 여긴 잊혀진 별 지구야. 여기 바다엔 네가 떠날 때 떨군 연료통이 침몰해있어. 거기선 네가 좋아하는 내 목소리가 바람소리처럼 먹빛으로 너울대. 그리고 여기 하늘에선 네 목소리가 날마다 찾아와 안부를 물어. 그럼 나는 거기에 답장을 쓸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진 몰라도, 나는 거기에 있는 너를 그리워할 거야. 인류에게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별을 나는 추억하겠지. 추억이 기억과 다른 점은 바로 그런 것일 거야.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것이 언제든 현존할 수 있을 때…… 우린 잊고 싶은 기억들을 추억이라고 부르지 않아.
방금 머얼리서, 별 하나가 폭발하는 것을 보았어. 아주 먼 곳이었나 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창이 눈부시게 번쩍였을 뿐이야.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우드 씨는 수명을 다한 별일 거라고 그랬어. 나는 이렇게 생각해. 저건 소행성을 만난 별이야. 그렇다면 그건 무슨 별이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감을 못 잡겠어. 우린 지구로부터 너무 멀리 와버렸거든. 레이더의 사각지대에 있는 별들은 눈으로 절대 식별할 수가 없어. 그건 거대한 빛덩이였을 뿐이야. 지구였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설마.
레이더의 센서가 점점 더 예민한 소릴 내고 있어. 가까워지고 있나 봐. 대신 커다란 관문 하날 거쳐야 하지. 우린 웜홀을 통해 선체를 무사히 빼돌릴 거야. 네가 전해준 별에 안전하게 도착하겠지. 어떻게든 살아남겠지.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 살아왔으니까. 개화를 꿈꿀 거야, 사람들은. 과거의 보금자릴 잊고 그곳에서 터전을 가꾸겠다고 다짐할 거야. 나 역시 그렇게 할 것 같아. 네가 전해준 별이잖아. 다른 별도 아니고 네 흔적이 다다른 별. 그래도 가끔은 잊혀진 별이 그리울 것 같아. 우리들의 추억이 거기에 죄 묻혀있어. 이미, 혹은 언젠가 소행성을 만날 그 별. 부딪쳐 폭발하고 그 잔재만 조각조각 남아도 이제 상관없는 그 별. 거기에 너와 내가 있어. 이 순간에 멀찍이 소행성 하나가 몸을 굴리며 맹렬하게 달려가. 누군가의 추억이 묻혀있을 또 다른 별이 곧 사라질 것 같아. 나는 창틀 대신 품 속의 앨범을 꽉 붙들고서, 우릴 지나는 소행성의 꼬리에다 대고 인사했어.
안녕, 잘 가. 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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